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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버스의 맨 뒷자리에 무너지듯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곧 끝없이 반복되는 사람과 건물에 흥미를 잃고 만다. 버스안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져 본다. 앞 좌석에서는 여자 동기와 한학번 위의 선배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 웃으며 사교용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최근에 구입한 커널형 이어폰이 그 소리를 지워내고 대신 Bump of chicken의 노래를 귀에 구겨넣고 있었다. 이어폰 자체는 소니의 진동판을 카피한 싸구려 중국제였지만, 팁은 일류 제조사인 UE사의 컴플리팁으로 교체해 놓았기에 차음성 하나만은 상위모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저런 대화를 끔찍히 싫어하는 그였기에, 이어폰에 감사의 인사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Bump of chikcen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의 전주가 나오기 전의 아주 짧은 텀 동안만 그는 격리에서 풀려나 현실로 돌아온다. 가장 시끄러운 곳으로 자연히 눈길이 돌아간다. 옆자리에 남녀가 모여 마피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Linkin park의 In the end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자, 손가락으로 창턱을 피아노치듯 두드려 박자를 세 본다. 시선은 아직 옆자리에 머물러 있다. 복학생 선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후배들은 허리를 꺾고 웃기 바쁘다. 평상시라면 그도 옆에서 벌어지는 마피아 게임에 즐겁게 참여했겠지만, 어제 저녁 부모님과 군입대 시기 문제로 크게 싸운 터라 그의 기분은 낡은 수조 속 물때처럼 질척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필 엠티 가기 전날 저녁에 싸우다니,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결국 버스 안과 버스 밖의 풍경 모두에 질려버린 그는 다른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계절학기, 과배정, 이번학기 학점, 새내기맞이 등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잘도 떠올랐다. "아." 남자가 버스에 탄 이후로 처음 입에서 뱉어낸 것은 말이라 하기 어려운 짧은 탄성이었다. 눈 먼 당신, 눈을 떠 보기는 했었나요?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이 이렇게 현실로부터 눈멀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친구들에게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의한 금산분리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같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 보면, 돌아오는 것은 물음표뿐인 표정이나 ‘잘은 모르겠지만 나쁜 거겠지.’ 라는 말 정도인 것을 보면 말이다. 나와 내 주위 뿐만 아니라, 대학생, 혹은 20대들이 시사적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상황은 나의 주변을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로 극히 저조한 지난 18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을 우려하는 신문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지난주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의 내용을 말해보라면 술술 말하겠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나 금산분리 완화와 같은 정책의 시행 명분이 무엇이며 반대하는 이들의 논지는 무엇인지를 아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들이 어째서 이렇게 시사적 현실과 동떨어져 버렸는지에 대해, ‘다른 게 더 재미있으니까’라는 변명은 궁색하지만 현실적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주장에 얽힌 비화를 다룬 시사 다큐와, 오늘자 오락프로그램, 혹은 프로스포츠 생중계 중 어느 쪽 채널의 리모컨 버튼으로 손가락이 움직일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어느 날, 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사다큐를 선택했다고 하자. 그러나 다수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흥미 제공이라는 원초적 기능 외에 공감대나 공통의 화제를 형성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아마 당신은 다음 날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어제의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에 대한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나도 무슨 소린지 다 안다는 어색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고, 그날 저녁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로 채널을 돌릴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굴레는 깨져야 한다. 아무도 신자유주의식 경쟁이 우리보다 못한 이웃의, 혹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생활을 깨부수며 존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르는 개념인 ‘비교우위’라는 것이 이미 강대국의, 혹은 대기업의 ‘절대 우위’로 왜곡되어 버린 지 오래라는 것을 귀에 대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사 누군가가 말해준다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귀를 틀어막고 있는 현재 우리의 자세로는 그 말들을 들을 수조차 없다. 밖이 시끄럽다면 일어나서 창밖을 보아야 한다. 그래도 보이지 않고 알기 힘들다면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 혁명이 일어나는지, 축제가 벌어지는지, 혹은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 사람들의 눈이 머는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홀로 눈을 뜨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조리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사적 현실로부터 눈을 닫고 사는 당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눈을 뜬다 해도,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다는 이유로 정상인 눈을 다시 감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 있는 ‘현실에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어쩌면, 멀쩡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도시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눈을 뜨고 우리 앞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당신의 눈은, 애초부터 멀어있지 않았다. 당신이 감았을 뿐이다. 서두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문장의 장식적인 표현들을 삭제했고, 너무 긴 문장을 나누거나 줄였습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문 기사를 언급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 지적받은 표현이나 띄어쓰기 오류 등을 수정했습니다. 참고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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