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지 않은 한마리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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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버스의 맨 뒷자리에 무너지듯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곧 끝없이 반복되는 사람과 건물에 흥미를 잃고 만다.

버스안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져 본다. 앞 좌석에서는 여자 동기와 한학번 위의 선배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 웃으며 사교용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최근에 구입한 커널형 이어폰이 그 소리를 지워내고 대신 Bump of chicken의 노래를 귀에 구겨넣고 있었다. 이어폰 자체는 소니의 진동판을 카피한 싸구려 중국제였지만, 팁은 일류 제조사인 UE사의 컴플리팁으로 교체해 놓았기에 차음성 하나만은 상위모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저런 대화를 끔찍히 싫어하는 그였기에, 이어폰에 감사의 인사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Bump of chikcen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의 전주가 나오기 전의 아주 짧은 텀 동안만 그는 격리에서 풀려나 현실로 돌아온다. 가장 시끄러운 곳으로 자연히 눈길이 돌아간다. 옆자리에 남녀가 모여 마피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Linkin park의 In the end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자, 손가락으로 창턱을 피아노치듯 두드려 박자를 세 본다.

시선은 아직 옆자리에 머물러 있다. 복학생 선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후배들은 허리를 꺾고 웃기 바쁘다. 평상시라면 그도 옆에서 벌어지는 마피아 게임에 즐겁게 참여했겠지만, 어제 저녁 부모님과 군입대 시기 문제로 크게 싸운 터라 그의 기분은 낡은 수조 속 물때처럼 질척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필 엠티 가기 전날 저녁에 싸우다니,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결국 버스 안과 버스 밖의 풍경 모두에 질려버린 그는 다른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계절학기, 과배정, 이번학기 학점, 새내기맞이 등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잘도 떠올랐다.
 
"아."

남자가 버스에 탄 이후로 처음 입에서 뱉어낸 것은 말이라 하기 어려운 짧은 탄성이었다.
by 블론 | 2008/12/01 19:32 |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고민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기 직전인 작년 2월에 신검을 받았다. 특별히 체중이 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시력차가 심한 것도 아니고 눈이 반 장애급으로 나쁜 것도 아니었기에 4급 이하의 신체등위, 즉 면제나 공익을 바라지도 않았고, 사는 곳이 청주였고 신검을 받을 당시의 신분 또한 대학생이었으므로 상근 또한 바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현실은  신체등위 2급. 현역 입대 대상이었다. 주저리주저리 말은 많았지만 요점은 결국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 않는 이상 땅개란 말이다.

사실 나는 땅개로 가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운이 좋다면 카투사에 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평범한 수준의 운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현역 육군으로 입대하더라도 대학교가 그럭저럭 괜찮은 간판을 가진 곳이기에 그래도 개 뺑이치는 보직으로 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얍삽한 기대감도 있었고, 설사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뭐 갔다 오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가는 시기다. 사실 지방으로 갈수록 대학생의 평균 군입대시기는 빨라진다. 보통 1학년을 마치면 다들 입대하고, 빠르다면 1학년 1학기만 마친 후 입대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혹은 드물지만 대학교도 입학하지 않고 군대를 먼저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서울의 대학교는 약간 사정이 다르다. 보통 다들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하고, 1학년을 마치고 혹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하는 사람은 학고나 대자보급의 사고, 혹은 상근과 같은 원인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신검을 받을 당시의 나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가지지 못 한 상태였기에 1학년을 마치면 군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 없이 알았노라며 대답했다.

보통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이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할 경우, 그는 입대 전에 다음 학번의 새내기를 만나지 못하는데다가, 전역 후에는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아직 군대에 복무중이고 여자동기들은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졸업학년인 상태에 놓인다. 서울이 고향이라면 고등학교 친구들이라도 있겠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인 경우 인간관계는 완전히 리셋되는 수준까지 치닫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2학년을 다니는 동안 다음 학번 새내기들과 정을 쌓고, '돌아올 곳'을 만든 후에 입대한다. 

별로 인생경험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꽤나 잘 짜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1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나는 그냥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강권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대학의 '반'이라는 집단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집단과의 부조화 어쩌구 하는 고상한 말 씨부렁거릴 필요 없이, 그냥 너무 잘나신 분들에 둘러싸인 덕에 자기비하는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고 한없이 찌질해 보였기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이대로 대학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리셋해버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5월 달쯤에 만났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변하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찌질농도가 나의 두세배는 농밀했던 그 녀석은 소위 '잘나가는' 대학생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아니 씨바, 쟤도 저래 됐는데 나라고 안 될 거 있냐는 거다. 안경을 벗고. 머리를 물들이고 피부과에 돈을 쏟아부었다. 소개팅을 격주체재로 돌리고, 선배들과의 술자리에 무조건 참석했으며 반 소모임도 두개나 들어갔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노력으로, 12월을 향해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찌질했던 나도 '잘나가는'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간의 형상을 한' 그 무언가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반이라는 곳이, 내게 '돌아올 곳' 으로 느껴질 만큼 친근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 나는 별 생각 없이 부모님께 군대를 2학년 마치고 가겠노라 말씀드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무슨 개소리세요 님아?' 수준의 응답이었다. 아무리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주변의 사례를 말해도 요지부동이다. 내가 여태껏 해온건 뭐가 되냐. 사귄지 한 달 된, 한창 진도 빼는 중인 여자 친구는 어떡하고, 반 소모임 부회장직은 어떡하며, 야심차게 들어간 새내기맞이단은 또 어떡하냐는 말이다. 참내. 유일한 희망이 09년 10월로 쓴 카투사였는데, 그거마저 떨어졌다. 젠장할. 이대로 리셋 ㄱㄱㅅ인가? 에휴.

by 블론 | 2008/11/19 00:39 |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눈 먼 당신, 눈을 떠 보기는 했었나요?

눈 먼 당신, 눈을 떠 보기는 했었나요?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신자유주의'다. 어머니가 자식 대학등록금 메워 보겠다고 넣었던 펀드를 반으로 토막을 내놓은 금융위기의 뿌리가 신자유주의라 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오바마가 당선된 의미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응징이라 하니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주제라는 막연한 생각은 든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인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 정기세무조사 감축, 상속세 단계적 인하 등이 대부분 신자유주의 노선의 정책이라 하니, 우리의 삶에 뭔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머릿속과는 달리, 어느새 손가락은 이미 채널을 오락프로그램으로 돌리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이 이렇게 현실로부터 눈멀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친구들에게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의한 금산분리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같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 보면, 돌아오는 것은 물음표뿐인 표정이나 ‘잘은 모르겠지만 나쁜 거겠지.’ 라는 말 정도인 것을 보면 말이다. 나와 내 주위 뿐만 아니라, 대학생, 혹은 20대들이 시사적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상황은 나의 주변을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로 극히 저조한 지난 18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을 우려하는 신문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지난주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의 내용을 말해보라면 술술 말하겠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나 금산분리 완화와 같은 정책의 시행 명분이 무엇이며 반대하는 이들의 논지는 무엇인지를 아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들이 어째서 이렇게 시사적 현실과 동떨어져 버렸는지에 대해, ‘다른 게 더 재미있으니까’라는 변명은 궁색하지만 현실적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주장에 얽힌 비화를 다룬 시사 다큐와, 오늘자 오락프로그램, 혹은 프로스포츠 생중계 중 어느 쪽 채널의 리모컨 버튼으로 손가락이 움직일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어느 날, 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사다큐를 선택했다고 하자. 그러나 다수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흥미 제공이라는 원초적 기능 외에 공감대나 공통의 화제를 형성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아마 당신은 다음 날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어제의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에 대한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나도 무슨 소린지 다 안다는 어색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고, 그날 저녁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로 채널을 돌릴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굴레는 깨져야 한다. 아무도 신자유주의식 경쟁이 우리보다 못한 이웃의, 혹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생활을 깨부수며 존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르는 개념인 ‘비교우위’라는 것이 이미 강대국의, 혹은 대기업의 ‘절대 우위’로 왜곡되어 버린 지 오래라는 것을 귀에 대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사 누군가가 말해준다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귀를 틀어막고 있는 현재 우리의 자세로는 그 말들을 들을 수조차 없다. 밖이 시끄럽다면 일어나서 창밖을 보아야 한다. 그래도 보이지 않고 알기 힘들다면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 혁명이 일어나는지, 축제가 벌어지는지, 혹은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 사람들의 눈이 머는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홀로 눈을 뜨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조리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사적 현실로부터 눈을 닫고 사는 당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눈을 뜬다 해도,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다는 이유로 정상인 눈을 다시 감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 있는 ‘현실에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어쩌면, 멀쩡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도시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눈을 뜨고 우리 앞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당신의 눈은, 애초부터 멀어있지 않았다. 당신이 감았을 뿐이다.

서두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문장의 장식적인 표현들을 삭제했고, 너무 긴 문장을 나누거나 줄였습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문 기사를 언급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 지적받은 표현이나 띄어쓰기 오류 등을 수정했습니다.

참고 사이트 :
http://blog.daum.net/revolution2007/1714080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5706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01824195&code=910113

 

by 블론 | 2008/11/18 04:26 |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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